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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와 인종차별이 무슨 관계가 있죠?”
하나씩 살펴보자. 한국은 약 46년 전인 1978년 12월5일, 국제인권조약인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인종차별철폐협약)에 가입했다.(발효일은 1979년 1월4일) 이 협약은 인종, 피부색, 가문 또는 민족이나 종족 기원에 근거를 둔 어떠한 구별, 배척, 제한 또는 우선권(우대)을 ‘인종차별’로 정의한다. 협약 가입국(당사국)은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폐지할 의무를 진다.
유엔 인권조약기구 협력 의무 ‘비토 산업은행 ’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착취 목적의 인신매매,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매매,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미국 국무부가 미국을 포함한 188개국 인신매매 정보를 수집해 매년 발표하는 인신매매 보고서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착취를 목적으로 하는 납치뿐만 아니라 일터(사업장)에서 사업주가 착취 목적으 사업자신용대출 로 누군가의 여권 등 신분증과 통장을 압수하고, 임금을 주지 않고, 동의 없이 임금을 깎고, 숙소를 마음대로 드나들며 감시하고, 외출을 금지하거나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일도 인신매매다. 낯선 언어와 문화, 아는 사람이 없는 사회관계망 부재, 외국인을 향한 편견과 낙인, 불안정한 체류 자격 때문에 이주민, 특히 미등록 이주민은 인신매매에 취약하다.
최고의 직장종합하면 인신매매는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다. 그런데 인권 문제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인권위원이 이를 모르고, 모른다는 사실에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다면?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인신매매와 인종차별이 무슨 관계가 있죠?” 차관급 고위공직자인 인권위 상임위원 김 월 300만원 용원이 2025년 2월24일 전원위원회(위원장과 상임위원, 비상임위원이 모두 참여)에서 한 말이다. 인권위가 한국 정부의 인종차별철폐협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 과제를 정리한 독립보고서를 2025년 3월31일까지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보내기 전에 인권위원들의 심의를 받는 자리였다. 매년 3월2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삼성카드 통신비그런 자리에서 그는 인신매매 내용을 보고서에서 빼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밖에도 “‘불법체류자’ 용어 사용 문제는 인종차별과 다르다” “난민 인정 문제를 왜 인종차별 문제로 끌고 들어오냐”며 보고서 작성 담당 부서장과 담당자를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한 말이 “이거 의결해서 뭐 하게요? 의결하면 대한민국 인권이 좋아져요? 부결시키자고요”였다. 유엔에 보고서를 내지 말자는 뜻이다. 인종차별철폐위원회와 같은 유엔 인권조약기구에 협력할 의무가 있는 인권위 역할을 포기하자는 말과 같다. 그런데 김용원이 어깃장을 놓은 사안들은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이미 2018년 12월 ‘불법체류자’와 같은 비하적인 용어 사용 철폐, 신속하고 공정한 난민 인정심사 진행 등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며 해결을 촉구한 문제들이다.
그의 무도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용원은 2025년 3월4일 임시 전원위원회에서 인종차별철폐협약 제1조 2항을 콕 집어 언급했다. ‘이 협약은 체약국(당사국)이 자국의 시민과 비시민을 구별하여 어느 한쪽에의 배척, 제한 또는 우선권을 부여하는 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얼핏 보면 한국 국적이 없는 이주민, 난민, 외국 학생 등 비시민을 차별해도 된다는 말처럼 보인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왼쪽 첫째)이 2025년 1월17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회의원들을 향해 언성을 높이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간리, 한국 인권위 특별심사 개시하나
그러나 이 조항은 당사국이 시민과 비시민을 국적 유무와 같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구별’하는 행위를 인종차별 정의에서 제외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이 조항이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국제인권조약에서 보장하는 권리와 자유를 손상하는 방식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를테면 한국 국적이 없는 이주민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차별 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와 같이 세계인권선언,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에서 인정하고 명시한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김용원은 “국적을 가지고 ‘차별’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이 협약(인종차별철폐협약)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새로 임명되거나 임기를 이어가고 있는 일부 인권위원한테 나타나는 이런 문제, 즉 인권 문제에 관해 아무런 기초 지식도, 전문성도, 감수성도, 배우려는 의지도 없으면서 인권위를 정치 선전장으로 만드는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이 지금의 인권위를 갉아먹고 있다. 2024년 9월6일 취임한 위원장 안창호도 이런 퇴행 대열에 빠르게 동참했다.
대표적인 일이 2025년 2월10일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라는 이름의 안건을 처리한 일이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사건을 심리할 때 형사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증거조사를 하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장(현재 권한대행 체제)에게 표명하고, 내란 중요임무에 종사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과 군·경 책임자들 재판을 담당한 법원에 불구속 재판 원칙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한 안건이다. 시민들 사이에서 ‘내란범 비호’ 안건으로 불린다. 상임위원 김용원과 비상임위원 한석훈·이한별·강정혜, 2025년 3월1일 인권위를 떠난 상임위원 이충상, 위원장 안창호 등 재적위원 11명 중 6명이 이 안건에 찬성했다. 시민단체들은 안창호·김용원·이충상·한석훈·이한별·강정혜 이들을 “내란 부역자”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안창호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인권위원 지명과 선출 방식, 위원회 구성 등을 종합하여 국가인권기구의 등급을 심사하는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간리) 승인소위원회에 최근 보낸 의견서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36개 시민단체)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168개 시민단체)로부터 특별심사 요청서를 접수한 간리는 2025년 3월 중에 한국 인권위를 상대로 하는 특별심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의 특수성으로 인해 일부 형사소송법의 규정 준용을 배제하더라도, 그 특성에 반하지 않는다면 형사소송법 규정을 따라야 한다. (…) 2025년 2월10일 통과된 우리 위원회 결정은 대통령 탄핵에 대한 기각이나 찬성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의 공정성 등을 강조하며 대통령 탄핵심판 시 적법절차 원칙 준수를 촉구한 것이다. 엄격한 증거조사 등 형사소송에 준하는 절차를 권고하는 것은 탄핵심판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인권문제 발생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왼쪽)과 이충상 전 인권위 상임위원. 한겨레 신소영·김태형 기자 viator@hani.co.kr, xogud555@hani.co.kr
왼쪽부터 이한별·한석훈·강정혜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한겨레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권위가 제 역할 못할 때 피해자는 ‘시민’
이는 윤석열 대리인단이 주장하는 내용과 다르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군·경 책임자들의 피의자 진술조서 내용을 당사자가 인정하지 않았는데도 윤석열 탄핵심판 증거로 삼는 것은 형사소송법의 전문법칙, 즉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전문증거(진술을 기재한 서류)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헌재는 탄핵심판이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의 권리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형사재판’이 아니라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가 중대한지 여부를 판단해 헌법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제일 큰 목적인 ‘헌법재판’인 점을 고려해, 그동안 형사소송법 전문법칙을 완화해서 적용해왔다는 입장이다.
헌재 헌법연구관을 지낸 박진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청구인(윤석열)이 아닌 제3자(윤석열 탄핵심판 사건 증인)가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이 기재된 조서가, 원진술자(제3자)가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됐다는 사실이 원진술자 서명, 날인 등 객관적인 방법과 원진술자 진술에 의해 증명된다면 조서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고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탄핵심판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은 사람의 수사기관 진술조서를 원진술자 진술 없이 증거로 사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이처럼 윤석열 정부 들어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상황”(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다.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인권침해를 당하는 시민들에게 갈 수밖에 없다.
김태경(23)씨는 2019년 고3 시절 ‘생활과 윤리’ 과목 교과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교과서가 성소수자를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기술하고, 동성혼을 찬반 문제로 다루면서 ‘비정상적인 성행위로 에이즈와 성병이 확산된다’는 혐오표현을 반대 주장으로 실은 점이 눈에 밟혔다. 이런 내용이 교과서에 계속 실린다면 성소수자 학생들이 상처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김씨는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문제가 된 교과서 내용(2009 개정 교육과정 기반)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삭제돼 2020학년도 교과서부터는 반영되지 않아 별도의 구제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면서도, 교육부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이 기술되지 않도록 교과서 검정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김씨는 “고교에서 아우팅(타인이 성소수자 의사에 반해 그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으로 괴롭힘을 당하다가 자퇴한 친한 언니한테 ‘자퇴 전후로 힘들었는데 큰 위로가 됐다’는 말을 들었다. 내 주변의 성소수자들도 위안을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교과서 ‘혐오표현’ 삭제 등 일궜는데…
하지만 김씨는 진정할 당시 인권위가 지금과 같았다면 “인권위를 보며 더욱 절망했을 테고, 외부에 문제를 알리기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동성애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위원장(안창호)과 인권위원(김용원·이충상·한석훈)으로 임명되고, 비상계엄을 선포해 많은 시민을 충격과 혼란에 빠뜨린 윤석열을 오히려 비호하는 안건이 통과된 인권위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 “현재 계엄 정국에서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그나마 안심이 돼요.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장애와 질병, 아우팅 등 외적인 제약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수자들도 있어요. 인권위는 이런 소수자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데,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을 비호하는 지금 인권위는 시대에 역행하고 있어요.”
이처럼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반인권적 인물들이 인권위에 들어오면서, 인권위가 성소수자 인권침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진정이 위축되는 현실이 발생한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의 정민석 대표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고 있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이 문제는 인권위에 진정할 수 있다’라고 지금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내 인권침해를 구제하고 나를 지지하는 국가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청소년 성소수자 삶을 더 불안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가폭력 피해자, 성폭력 피해자를 비롯해 여러 인권침해 피해자를 돕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장애인 차별과 같은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사건이 법원에 갈 때 장애인 인권을 보호하는 법원 판결은 저절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위의 정책 권고와 의견 표명이 축적된 산물인 경우가 많다”며 “법원이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불리지만, 사실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의 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 기관은 인권위”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후견인(장애·질병·노령 등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성인을 지원하는 사람) 선정을 받은 정신장애인의 금융거래를 우체국 은행이 제한(100만원 미만은 창구 거래만 허용 등)한 것은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원심 판결을 2023년 9월27일 대법원이 확정했다. 하급심에서 심리가 진행될 때만 하더라도 판사가 그것이 왜 장애인 차별인지 공감하지 못했는데, 차별이 맞다는 인권위 판단이 법원 판결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인권위는 2019년 4월 “정신장애인이 당해 거래일로부터 30일 이내 100만원 미만의 거래 시에도 우체국에 직접 와서 대면 거래를 하도록 하고, 인터넷과 자동입출금기(ATM) 등 비대면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장애인의 금융 활동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다. 특히 피진정인(우정사업본부장)은 국가기관으로서 차별 해소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역할 수행이 요구되므로 (…) 휴일 등 대면 거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장애인이 ATM을 이용해 금융거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책임이 있다”는 의견을 우정사업본부장에게 표명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2025년 1월13일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가 열리는 서울 중구 인권위 14층 복도에서 일부 인권위원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인권위의 결정이 전향적 판결에 도움”
“인권위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권고를 받은 상대방이 그 권고를 불수용하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권고가 의미를 가지는 건, 피해를 입은 시민에게 희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 때 내 편에 서주는 인권위로 인해 다시 희망을 가지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인권위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은 더는 희망을 잃고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 피폐해질 것입니다.” 최정규 변호사의 말이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